WHITE

Dyer, R. (2017[1997]). White. 박소정 역 (2020). <화이트: 백인 재현의 정치학>. 서울: 컬처룩.

I published a Korean translation of White, one of Richard Dyer‘s work.

In Western media, whites take up the position of ‘just human’, not a particular race. White questions this and examines representation of whiteness in Western visual culture. From Renaissance paintings to photography, 1950s Italian cinema, and recent Sci-fi movies, White provides a groundbreaking exploration of white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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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ook was featured in major daily newspapers including 경향신문 / 교수신문 / 동아일보 / 문화일보 / 서울신문 / 연합뉴스 / 조선일보 / 한국일보 / 한겨레 / 한겨레21

옮긴이의 말 Translator’s remark

어린 시절 한 학급에 한 명 정도는 ‘깜시’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요즘에는 감수성이 조금은 진일보하여 그런 놀림이 줄었을지, 혹은 오히려 더 ‘힙한’ 비하 용어로 대체되었을지 모르겠으나, 단일민족의 신화를 가진 우리 사회에서도 누군가는 피부가 더 검다는 이유로 열등감을 경험한다. 흰 피부는 아름다움의 기준으로 매우 일상적이고 자연스럽게 우리 속에 스며있다. 리차드 다이어의 <<화이트>>는 그 일상성을 깨트리고 ‘낯설게 보기’를 주장하는 책이다.

<화이트>는 지구적 질서에서 규범으로 여겨지는 백인성에 대한 비판적인 접근을 제공한다. 백인성은 서구 문화에서 특권적인 위치를 형성해 온 문화적 구성물이라는 것이 책의 요지다. <화이트>가 1997년 처음 출간되기 전, 이 책의 핵심적인 주장은 이미 1988년 같은 제목을 단 논문으로 발표된 바 있다. 그 논문에서 다이어는 세 영화 속 백인의 재현을 분석하면서 이것이 “백인을 백인으로서” 다루는 논의의 시작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밝힌다. 그리고 나서 논문의 말미에 남겨둔 여러 과제들, 즉 백인 얼굴을 표준으로 삼아 발전한 사진술, 할리우드 영화에서 스타를 비추는 조명 관습에서 드러나는 백인성, 기독교적인 레토릭에 부합하는 빛의 사용과 백인성의 관계 등에 대한 분석을 책 <화이트>를 통해 완수한다. 다이어가 안내하는 이 유구하고도 역동적인 백인성의 세계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했던, 또는 알고서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던 세상의 편향을 드러낸다.

지난 20여 년간 <화이트>는 백인성 연구의 새로운 장을 열며 고전으로 자리 잡았고, 미디어·기술 환경의 변화 속에서 함께 변모하는 인종 담론을 해체하려는 수많은 후속 연구들에 영향을 미쳤다. <화이트> 발간 20주년 기념 서문을 쓴 프랑스의 문화연구자 막심 세르뷜Maxime Cervulle 또한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시계視界를 싼 껍질을 벗겨가는” 다이어의 문화정치에 동참한다. 이 책은 <화이트> 발간 20주년 기념판을 번역한 것으로, 그의 기념 서문도 함께 번역해 수록했다. 다이어와 마찬가지로 인종과 젠더, 섹슈얼리티에 대한 재현 문제를 주로 연구해 온 세르뷜은 고전이 남긴 예리한 통찰을 젊은 문화연구자의 시선으로 새롭게 벼려낸다. 그의 서문을 통해서 백인 권력의 정상성을 재현 체제에서의 인종주의적 “무지”로 재개념화해보고, 다이어는 다루지 않았던, 보다 노골적인 인종주의 폭력과 얽힌 재현물들의 문제를 살펴볼 수 있다.

언어를 번역한다는 것은 단순히 외국어와 우리말 사이의 일대일 대응 관계를 찾아 순서대로 옮기는 일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를 번역해 내는 일임을 <화이트>를 통해 느꼈다. 영국의 백인 남성이 쓴 이 책을 한국의 유색인 여성인 내가 옮기는 과정은 연구자로서는 새로운 세계에 제법 깊숙이 들어가 보는 즐거운 경험이면서도 한편으로는 품 안에 다 담기지 못한 어떤 의미들이 시나브로 빠져나가는 것 같아 허둥대는 시간이기도 했다. 여기서는 그 번역의 고비에서 발견한 <화이트>의 의의를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첫 번째 고비는 ‘white’와 ‘whiteness’라는 단어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자주 등장한 이 두 단어는 마주하는 순간마다 번역의 고민을 불러일으켰다. 본문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두 단어를 각각 ‘흰색’과 ‘흼’으로 옮겼으나, 이것이 단순히 하얀 색깔을 의미하지만은 않는다는 것을 다이어의 통찰력 있는 서술을 통해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다이어는 흰색의 성질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흰색을 색조, 인종, 피부 세 차원에 나누어 살펴보고 있다. 그리고 다시 각 차원에서 흰색이 지닌 의미가 다른 차원으로 미끄러지며 백인성의 권력을 작동시키는 양상을 분석한다. 따라서 백인성의 속성으로서의 희다는 개념은 검정에 반대되는 색으로서의 단순명사가 아니라, 인종주의, 식민주의, 기독교, 여성성, 계급성, 이성애 규범성 등의 차원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하나의 담론이다. 책의 제목을 우리말로 옮기지 않고 ‘화이트’로 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두 번째는 이 책이 분석 대상으로 끌어오는 수많은 서구 대중문화물들이다. 다이어는 고전 문학부터 대중음악, 르네상스 회화부터 20세기의 사진술, 1950년대 이탈리아 영화부터 할리우드 SF 영화까지 광범위한 영역을 종횡무진하며 백인성의 자취를 좇는다. 그리고 이들 텍스트 중 대부분은 인종을 명시적인 주제로 삼거나 노골적인 흑백 이분법적 재현에 의존하고 있지 않은 경우들이다. 다이어가 이토록 광역의 텍스트를 다루는 것은 백인성의 권력이 사실상 모든 서구 문화의 기저에 하나의 ‘관행’으로서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이 책에서 만나게 될 사례 중에는 한국인 독자로서는 낯선 것들이 다수 있으리라 짐작한다. 이에 대해서는 역주를 통해 설명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백문이 불여일견인 법이니 사례로 제시된 작품들을 찾아 감상하며 책을 읽어나가는 것은 이 책을 더 두텁게 읽는 방법이 될 것이다.

세 번째로, 책의 곳곳에서 1인칭 주어를 발견할 수 있다. 1장에서 다이어는 백인성과 관련된 자신의 개인사와 내밀한 감정을 고백한다. 그리고 백인인 자신이 백인성에 대해서 이야기함으로써 초래할 수 있는 정치적 위험성에 대해 경고한다. 이후에도 다이어는 자신이 백인으로서 지닌 위치를 되새기며 분석을 이어나가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책에서 자주 사용되는 ‘우리’라는 주어에서 드러난다. 다이어가 말하는 ‘우리’는 그 일반적인 용례처럼 자신과 독자를 포함한 일반을 일컫기 위해 사용될 때도 있지만, 때로는 다이어 자신이 속한 인종 집단, ‘우리 백인’을 일컫기 위함이다. 따라서 그 ‘우리’에 들지 못한 한국인 독자로서는 어떤 울타리에 가로막힌 순간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다이어가 호명하는 ‘우리’는 ‘너희’를 배제하는 경계를 만들기 위함이라기보다 자신이 속한 백인이라는 정체성 범주를 특수한 것으로 만들기 위함이다.

자신의 위치에서 말해야 한다는 책임은 늘 하위 주체에게 지워진 짐이었다. 하위 주체는 세상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대변되지도 재현되지도 못해 왔기에,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존중받기 위해서 자신의 위치를 끊임없이 호소해야 한다. ‘우리 여성들은…,’ ‘우리 흑인들은…,’ ‘우리 노동자들은….’ 반면 백인성의 권력이란 그러한 호소를 할 필요 없다는 데서 증명된다. 백인이란 곧 인간 규범으로 여겨지며, 백인은 ‘우리 백인들은’이라는 주어를 생략한 채 자신이 원하는 위치에 서서 자유롭게 말한다. 백인은 어떤 속성으로 환원될 필요 없이 세상에 편재해 있는 다양한 위치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따라서 다이어는 백인이 ‘자신의 위치’에서 말하게 함으로써 그 위치의 특수성을 폭로하고자 한다. 백인 또한 특수한 맥락과 위치를 지닌 하나의 인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white’가 내포하는 두터운 의미의 지층, 백인성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서구 문화의 무수한 면면들, ‘우리 백인’이라는 위치, 이러한 것들이 한국인 독자들에게는 또 다른 의미로 확장되고 굴절되어 독해되리라 예상한다. <화이트>를 읽으면서 한국인으로서의 우리는 두 가지 위치에 서 볼 수 있다. 하나는 비백인이자 유색인으로서의 자리로, 그 자리에서 우리는 다이어의 서술로부터 탈식민주의적이고 탈제국주의적인 통쾌함을 느낀다. 한편 우리는 백인성을 내화한 이의 자리에도 서 볼 수 있다. 백인성이란 코카시아인에게 한정된 속성이 아니다. 한국 사회 또한 결코 인종주의나 피부색주의colorism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며, 우리의 시선 속에서는 또 다른 백인성이 작동한다. 국내 체류 외국인이 230만 명을 넘어선 현 시점에서 한국 사회가 남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지에서 온 어두운 피부색의 외국인에게는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은 다문화 수용 지수와 같은 지표를 동원하지 않아도 사회적인 분위기로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인종의 위계, 피부색의 스펙트럼은 상대적이기에 우리 사회는 늘 울타리와 사다리를 세움으로써 누군가를 ‘깜시’로 만들고 우리의 정상성을 확인받고자 한다. <<화이트>>를 읽는 경험은 이 두 자리를 동시에 체험하는, 그리하여 세계화된 환경 속에서 상호 존중의 관계를 떠받쳐 줄 윤리적·정치적 감각을 형성하는 기회이기를 바란다.